과거에서 미래까지 즐거운 시간여행, 단양 한드미마을작성일 | 2020-07-23

단양 도담삼봉의 멋스러운 풍경을 지나 소백산 비로봉을 향해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 옥수수 등 각종 작물이 풍성하게 자라는
밭들 사이로 여러 체험마을의 표지판을 지나 사각정자와 시원한 나무숲이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아래쪽 길로 들어서면 곧 작은 계곡과 함께 잘 정돈된 베이커리카페를 만나게 된다.
풀들이 소담스럽게 돋아 있는 그곳 마당에 내려서면 시원한 물소리가 반기는 곳,
한드미다움으로 전통체험마을의 모델이 된 한드미마을이다.

▲ 계곡과 마을을 이어주는 나무다리
과거, 한발 빠른 성실함으로 만든 기회
한드미마을 소개
‘큰 들’ 또는 ‘큰 골짜기’를 의미하는 한드미는 2000년대 정부 추진 사업에 적극 참여한 체험마을 1세대의 맏형이자,
한 해 관광객이 4만 명에 이르는 대표적인 체험마을이다. 무수히 많은 농촌마을이 몇 번씩 이름을 달리하는 농촌 관련 사업에 참여했지만,
어떤 마을은 성공하고, 또 어떤 마을은 그저 표지판만 남긴 채 잊히기도 했다.
지금도 1,000~2,000을 헤아리는 체험마을 중에서 한드미마을은 놀랍도록 풍성한 체험프로그램과
지속가능한 마을을 위한 독특하고도 선도적인 사업으로 확실한 차별화를 보여주고 있다.

▲ 한드미마을 정문찬 대표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농촌체험 운영과 마을개발을 맡고 있는, 마을주민이 설립한 마을기업 한드미영농조합법인의 정문찬 대표는
한드미마을의 현재가 기회선점을 위한 노력과 간절함 때문이라고 말한다. “체험마을 1세대로 시작했다. 정말 안 해 본 체험이 없었다.
원칙은 누구도 하지 않은 것,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똑같이 하면 2등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 마을의 초기 체험관
정말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곳 한드미에서 생겨났고, 운영되었으며 확산되었다.
계절별로 진행하는 텃밭 체험과 전통놀이체험과 같은 일반적인 것부터 떡메체험이나
솥뚜껑부침개 만들기, 뗏목체험 등은 한드미마을을 기반으로 전국으로 확산된 프로그램이다.
지금도 매일 돌아가는 프로그램에는 청소년을 위한 사물놀이나 밴드 활동부터
생태체험학교와 같은 연중 프로그램, 그리고 24절기 체험 등이 있다.

▲ 농촌유학을 위한 마을의 노력과 마을의 초등센터
사실 어느 하나의 체험프로그램을 만들면 일주일 만에 다른 마을로 퍼지는 게 당시의 상황이었다.
그래서 한드미마을에서는 지금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도전하고, 개발하였다.
그러다보니 독특하고,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자기만의 길을 가는 한드미만의
특색은 자연스럽게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관심은 방문을 불러왔다.
다른 마을에서 견학을 오고, 관련 분야의 교수님과 컨설팅 전문가들은 이 마을을 방문하고
그 결과를 여기저기 퍼트리는 역할을 했다. 정 대표는 이게 나중에 보니
한드미마을만의 전략이 되었다고 말한다. “경쟁마을이 곧 고객이다!”
거기에 생태마을을 지향했던 여러 가지 사업도 세상의 관심을 받는데 도움이 되었다.

▲ 한드미다운 실내체험이 가득한 실내체험장
“처음 시작부터 에코 빌리지를 지향했다. 한드미다움, 한드미스러움을 만들려고 했다. 나중에는 ‘농촌다움’이라는 표어로 발전했다.
길을 포장해도 황토콘을 사용했고, 오폐수시설을 최초로 만들었다. 물레방아간도 유지했고,
블록으로 만든 담도 허물고 다시 돌담으로 만들었으며, 옛날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하던 빨래터도 복원하였다.”

▲ 전통을 고스란히 담은 마을 빨래터
시작부터 확실한 차별화는 그 하나하나가 홍보가 되고, 경쟁력이 되었다. 결국 故 노무현 대통령의 체험까지 이어졌다.
당시 대통령은 왜 투자를 하는데 농촌관광이 활성화가 되지 않는지 궁금해 했고, 그에 대한 대책으로 대통령의 체험을 생각했다고 한다.
일단 대통령이 체험을 하면 전국적으로 보도가 될 것이고, 국민적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청와대는 바로 체험마을을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먼저 150여 개의 마을이 추천되었고,
거기서 다시 50여 개 마을로 추려진 다음 최종적으로 한드미마을이 선정되었다. ‘한드미다움’이 제대로 인정된 것이다.

▲ 마을의 변화와 함께하는 마을 베이커리
지난 세월의 고단하고도 땀이 밴 놀라운 과정은 마을 곳곳에 기념비처럼 새겨져 있다.
마을은 그야말로 체험마을의 박물관이자 정 대표와 한드미마을 사람들의 고민과 노력의 기념관인 셈이다.
지난 2월에 오픈한 베이커리 카페 앞에는 한드미마을을 대표하는 삼굿구이 체험장이 있다.

▲ 매일매일 직접 만드는 베이커리의 먹음직스런 빵들
새로운 체험거리가 무엇일까 날마다 고민하던 정 대표가 예전 마을에서 대마를 삶던 기억을 되살린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키만큼 큰 대마를 거대한 화덕 구덩이에 넣고 삶던 과정은 온 마을이 참여하던 인상 깊은 행사였다. 그리고 어렸을 때 했던 놀이도 말해준다.
돌로 둥그렇게 쌓아놓은 후 돌과 나무를 채우고 불을 붙인 후 그 위에 가져온 고구마 등을 올려놓고 다시 흙은 덮어놓는다.
그리고 한참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고 오면 달궈진 돌에 고구마는 절대 타지 않고, 적당히 구워져 있었다.
그 기억을 되살려 작은 화덕구덩이를 만들고, 그 옆에 김이 나오는 작고 네모난 구멍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나무와 돌과 흙을 차례로 쌓으면 거기서 나오는 뜨거운 김이 옆으로 빠져 거기에 있는
고구마나 옥수수, 감자, 달걀 등을 순식간에 구워준다. 화덕의 온도는 1000도에 가깝고, 옆 구멍의 온도도 300도에 가깝다.

▲ 옥수수와 감자, 달걀등을 넣기만 하면 맛있는 요리로 만들어주는 화덕체험
실제 불을 붙인 후에 화덕에서는 마치 화산을 폭발하듯 김이 솟구쳐 오른다고 한다.
그러면 정 대표 등은 빨리 구멍을 막으라고 소리치고, 신난 아이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구멍을 막으며 즐거워한다.
그렇게 체험을 하고 먹는 고구마와 옥수수는 그 무엇보다 맛있을 게 당연하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시설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다.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고, 드디어 화덕이 완성되고 마을사람들과 성공적인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첫 성공 이후 두 번째 체험이 故 노무현대통령이 방문했을 때였고,
그 뒤 삼굿구이는 다른 마을에서는 하기 어려운 한드미만의 체험이 되었다.

▲ 마을주민과 마을체험이 하나가 되는 다양한 시설들
체험장 옆 작은 다리를 건너면 옛 모습 그대로의 물레방아가 있다.
그 옆으로 계곡을 따라 펜션이 있고, 들꽃 정원과 거대한 느티나무가 있는 쉼터가 나온다.
거기에는 ‘행복미장원’이라는 간판과 느티나무라는 이름의 작은 집이 한 채 서있다.
고소영이 출연하는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만들었는데 방영이 무산되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제법 그럴 듯한 풍경을 연출해주는 명소가 되었다.

▲ 친환경적 소재로 마을의 편의를 더한 황토콘 길
펜션과 화단 옆으로는 작은 인공수로가 있다. 거기로 흐르는 물을 따라가면 빨래터가 나온다.
옛것의 보존과 함께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하던 빨래터를 제일 처음 복원한 것이다.
한드미다움이 어떤 것을 말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장소가 아닌가 싶다.
빨래터 옆으로 마을 돌담길이 이어진다.
그 길의 끝이 황토콘으로 만들어진 마을의 큰길이 나오고, 길옆으로 블록을 허물고 새롭게 단장한 돌담이 이어진다.
원래 차가 다니지 못할 정도로 작은 비포장도로를 다듬어서 소백산 제일 아랫동네까지 버스가 다닐 수 있게 만든 것이다.

▲ 마을의 역사와 함께해온 느티나무
그 길 주변에는 처음 체험장으로 활용되었던 빈집(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다)과
첫 체험마을의 교육장으로 활용되던 마을회관 등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정 대표는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듯했다. 처음 시작부터 찾는 사람이 넘쳐나고,
일손은 딸리던 그때 이곳을 기점으로 마을사람들은 밤잠을 설쳐가며 체험마을의 성공을 일궈냈던 것이다.
마을회관 뒤로 돌아가니 초등센터가 있다.
이제 곧 초등센터는 새롭게 만들어진 건물로 이전하고, 이곳은 1세대 어르신을 위한 공간인 호스피텔리움으로 운영될 것이다.

▲ 지금은 보기힘든 연탄 보관소
이어 정 대표가 이장을 맡고 처음 만들었던 마을 정류장을 지나,
중등센터와 故 노무현대통령 기념식수가 있는 곳을 찾았다.
센터를 들어가는 입구는 정자 그리고 운동기구가 있는 작은 숲과 비로봉 그리고 마을로 들어가는 삼거리이다.
센터 앞은 공터가 있고,그 끝에는 기념식수와 더 넓은 공터가, 그 아래에는 계곡이 자리하고 있는 공간이다.
지금은 휑하니 넓은 공터는 앞으로 야영장으로 조성될 것이고,
그 너머로 보이는 초등센터 새 건물과 다리로 연결될 것이다.

▲ 자연이 만든 신비로운 공간 속에서 즐기는 물놀이
아래 계곡은 물놀이장으로 꾸며진 계곡과 동굴로 넘어가는 나무다리가 있다.
물놀이장은 위는 계곡으로 아래에는 넓은 물놀이장으로 확연히 구분이 되고 있었다.
윗부분의 좁은 계곡은 아래에 그물을 놓고, 위에서 내려오는 물고기를 잡는 체험을 할 수 있고,
넓은 물놀이장은 어른, 아이가 다양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너른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 선선한 나무숲 끝 이색적인 자연 동굴
다리를 건너 만나는 선선한 나무숲 끝에는 짙은 동굴이 기다리고 있다.
예전에는 풍기까지 이 굴을 통해 다녔다고 하는데,
지금은 박쥐가 그 주인이며, 다양한 사극 촬영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그 안에 돌이 있다.
사극 때마다 그 위치를 바꿔가며 촬영을 하는 주요 소품이기도 하다.
이곳 주변은 사극 섭외부장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극촬영 명소라고 한다.
아직 제목도 정해지지 않은 MBC의 사극 역시 이미 장소 섭외가 완료되었다고 한다.
얼마 전 촬영했던 <녹두전>이 경우 배우들이 이런 좋은 환경에서 사극 촬영을 한 것은 처음이라고 탄성을 내질렀다는 후문이다.
인위적인 세트장과 다른 자연 그대로의 세트장과 한드미마을이 주는 매력이라고 하겠다.
현재, 간절함이 만든 안정과 농촌유학
한드미다움
한드미마을은 이미 5년 여 전에 독일 TUV Rheinland (130년 역사의 글로벌 시험인증기관)으로부터 에코빌리지(Eco-Village),
에코투어리즘(Eco-Tourism)을 인증을 받았다. 체험마을 초기부터 생태주차장 조성하고,
생태하천과 돌담길 꾸미기 등을 진행하면서 세계적인 생태마을이자 체험장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 보다 나은 체험마을을 만들기 위한 노력과 열정이 묻어나는 마을 사무소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 고민과 위기의식이 한드미마을의 새로운 출발을 만들어냈다.
농촌유학의 시작이었다. 정 대표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한다.
“농촌유학은 지금 생각해봐도 무모했었다. 되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간절함이 있었다.
사실 체험마을을 시작하고, 이 작은 마을에 의외로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그런데 마을의 인적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해가 갈수록 은퇴하시는 분도 늘어나는데 대체할 수 있는 젊은이들은 없었다.

▲ 외지인들의 농촌교육을 위한 마을 교육시설
결국 노동 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루 2~3시간 밖에 못자는 생활을 7년여를 하다 보니 이러다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계가 온 것이다. 잘못하면 모든 게 멈춰지겠다. 어떻게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 마을의 다음 세대를 위한 중등 센터
그러면서 생각한 해답이 마을에 젊은 사람들을 오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귀농귀촌이 활성화 되기 전이었다. 그래도 빈집을 수리하고, 여러 가지 노력을 해봤지만, 성과가 없었다.
그나마 여기저기 노력한 보람은 있어서 젊은 사람들이 일단 마을에 와보기는 했었다.
다행히 대부분 젊은 가족들은 마을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이제 결정만 하면 되는데, 꼭 마지막 벽을 넘지 못했다.
그건 아이들이었다. 이미 마을의 초등학교는 폐교가 결정돼 있었고,
만약 귀농귀촌을 해 아이가 학교를 가게 되면 다른 도회지로 유학을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모든 것은 다시 원점이 되었고, 젊은이를 오게 하자는 해답은 학교를 지켜야 한다 목표로 바뀌었다.
막막했을 상황이었지만, 한줄기 길이 보였다고 한다. 정 대표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표현으로 당시를 말한다.
“당시 1인 1촌 전문가제도가 있었다. 우리 마을에 온 전문가인 교수님에게 고민을 상담했다.
감당이 안 되는, 젊은이가 없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방법이 학교를 살리는 것인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교수님으로서도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당시 전문가들의 역할은 ‘관광객에게 어떻게 홍보하고,
어떻게 마케팅할 것인가’를 조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교수님이 일본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이었다.
그분이 일본의 산촌유학을 사례로 제시하면서, 이것은 한드미마을을 위한 것이라면서 추천을 해주셨다.”

▲ 마을에서 개발한 호박 만들기 체험
그때는 무슨 아이디어나 제안, 사업이 있으면 밀어붙일 때였다. 그래서 준비를 해 이듬해 학생들을 모집했다.
모집 첫해였는데도 12명이나 지원을 했다. 기존의 학생 8명이 더해지니 학생이 20명이 된 것이다. 폐교가 일단 보류가 되었다.
그 다음 해에는 16명이 지원했고, 자연스럽게 폐교 결정이 폐지되었다. 그 똑같은 과정으로 중학교 폐교도 막을 수 있었다.
지금은 유학생이 43명으로 오히려 분교가 본교보다 학생 수가 더 많다고 한다. 학생이 있으니 당연히 선생님들이 상주하고,
그들이 오후에 체험지도를 자연스럽게 맡게 되었다. 마을에 상시적으로 10여 명의 젊은 인력이 움직이게 된 것이고,
마을 활성화의 기본 바탕이 만들어진 것이다.

▲ 오늘날의 한드미 체험마을을 만든 패러글라이딩 체험
처음 정 대표는 뭔가 아이들에게 특별한 체험을 해주고 싶었서 패러글라이딩을 섭외하였다.
하지만 안전문제 때문에 프로펠러를 달고 봉우리 주변을 도는 패러글라이딩 연습프로그램만 참여하는 게 목표였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니 아이들이 그것마저 무서워서 타지 않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난감할 때 한 아이가 용기를 냈다.
그 아이가 타고서 재미있다고 하니 그제야 아이들이 타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타본 아이들이 서로 타겠다며 나서는 것을 넘어 동호인처럼 진짜 패러글라이딩을 타보겠다고 조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다음에 오면 태워주겠다는 그 약속이 다음 주부터 조교와 아이가 한 팀이 되어 하는 패러글라이딩 체험으로 정착된 것이다.
아 체험이 지역에 알려지고, 각 언론사에서 취재를 오더니
단양 KBS에서 1달에 1번씩 1년간 촬영을 하고 지역방송과 전국방송으로 이어졌다.
덕분에 단양 패러글라이딩과 함께 농촌유학센터가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사람이 힘을 쏟으니 하늘이 응답하는 상황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런 진인사(盡人事)가 특별한 ‘무엇’이 없는 한드미마을을
가장 대표적인 체험마을로 만들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미래, 지속가능한 마을을 위한 고민
한드미마을 체험 소개
코로나19가 지구상 모든 인간의 생활을 변화시키고 있다.
가장 피해가 심한 여행과 관광 그리고 단체행사의 가장자리에 있던 체험마을의 어려움은 더욱 크고 근본적인 문제가 되었다.
또한 체험마을이 시작된 지 20여 년이 넘어가고 있다. 처음 정력적으로 활동하던 일세대는
이제 일선에서 하나둘씩 은퇴하거나 활동량을 줄여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런 만큼 체험마을이 계속 사람과 어우러지며 공존의 가치를 말해주기 위해서는
좀 더 먼 미래에까지 이어갈 수 있는 준비가 시작되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 전통 문화의 복원과 체험 프로그램으로의 확대
한드미마을은 자신이 걸어왔던대로 앞장서서 이런 문제들을 고민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개척하려고 하고 있다.
농촌유학으로 지속가능성을 생겼지만, 그게 새로운 투자와 발전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면 체험마을의 유지운영까지 보장해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현상유지는 결국 도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 건물은 낡고, 새로운 투자가 이루어져야만 유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의 지원도 많아졌지만, 그보다 프로그램을 도입한 마을이 더 많아진 것도 문제이다. 경쟁이 너무 심한 것이다.
지금 잘 되고 있지만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라는 현실적인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 삼굿구이 체험
그중 하나가 6차 산업으로의 발전을 위한 상품의 개발이고, 여행스타일의 변화에 적응하는 야영장의 운영이다.
사실 6차 산업을 준비하기 위한 대응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생활패턴과 온라인 유통시장의 변화를 초래하는 상황에서
건강과 생태를 위한 농촌의 산업화는 어쩌면 새로운 미래를 여는 열쇠일수도 있다.
그리고 캠핑문화의 발전과 더불어 사회적 거리두기는 오히려 야영장이나 캠프장의 수요를 더욱 끌어올렸다고 한다.
찾는 이가 눈에 띄게 줄어든 체험마을과는 다르게 어떤 야영장의 경우 매출이 몇 배씩 늘기도 했다.

▲ 체험객의 변화에 발맞춘 마을의 신설 야영장
사실 야영장 문화는 단순히 여행문화의 변화뿐만 아니라 세월의 흐름에 따른 농촌의 필요에 더 적합한 모델일수도 있다.
적당한 관리와 거리는 지금 체험마을에 중요한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 농촌캠프의 인기프로그램인 사물놀이 체험학습
또 하나는 가을과 겨울에 주로 운영되는 캠프를 작은 단위로 자주 운영하는 것이다.
방학 기간 약 3주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캠프는 한드미마을의 인기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아이들은 체험뿐만 아니라 드럼 등 악기와 사물놀이를 배워 공연하기도 한다.
하지만 방학이 각 학교 자율에 맡겨지면서 일정 맞추기가 쉽지 않다.
경기도에 있는 마을들은 수도권이라는 특성 때문에 당일 또는 이틀이면 다양한 활동과 체험을 할 수 있지만
소백산 산골에 있는 마을은 그게 쉽지 않다.
그래서 기간을 조금 길게 2박3일에서 5박6일 정도의 캠프를 운영했던 것인데, 이제는 주말 캠프를 격주로 운영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아무래도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라 좀 더 가볍고, 유연하게 준비하고, 맞춰가려고 하는 것이다.

▲ 마을의 모든이들을 위한 편의 시설 확충
거기에 한드미마을에서 이번 겨울 개소를 야심차게 준비하는 게 어르신을 위한 새로운 공간과 문화의 개발이다.
열과 성의를 다해 한드미체험마을의 성공을 이끌었던 1세대 어르신들은 이제 은퇴를 앞두고 있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바라는 것 없이 아낌없이 참여했던 분들이다. 누구 말처럼 재주는 곰이 부린다는 말을 정 대표는 싫다고 한다.
열심히 일하신 분들이 체험마을의 성과로 이룬 혜택을 받으셔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호시피탈리티움 Hospitalitium이라는 것을 만들 계획이다.
일단 복지관, 요양원은 어감이 주는 느낌이 좋지 않고, 새롭게 움트는 곳이라는 의미로 (영어이름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이름을 붙였다.
마을을 위해 일하신 선배 어르신을 위해 한의사가 그분의 건강을 체크, 관리하며,
어르신들이 소통하고, 생활하며 휴양할 수 있는 한드미마을에서 만든 요양원이자 경로당인 것이다.

▲ 농촌캠프에서 진행하는 목공예 수업
어느 농촌마을을 가더라도 가장 고민스러운 부분이 ‘세월’이다. 세월은 중장년을 노년의 어르신들로 이끌고,
그분들은 경로당에 모여 자식 자랑에 여념이 없지만 자식들과 같이 살겠다는 이야기는 없다고 한다.
그분들은 만약 일을 하지 못하고 의지를 받아야 하는 때가 되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지낼까를 걱정한다.
마을에서 자식에게 짐이 될까 하는 두려움, 부모님을 모시지 못하는 자식들의 부담감을 해결하고자 나선 것이다.
만약 금년 겨울에 이 공간이 완성되고, 운영되기 시작한다면 한드미마을은 초등,
중등센터와 함께 어르신이 함께 전세대가 공존하는 마을이 될 것이다.

▲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져 조화로운 마을을 꿈꾸며
오늘날 한국인은 거의 도시에 살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항상 고향과 농어촌에 대한 그리움과 따뜻함을 그리워하고 있다.
수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 대표적인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는 유럽의 농촌마을들은 그 마음이 공존의 토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드미마을은 아이들을 과거와 체험을 통해 자라고, 가족은 함께 어우러지는 추억을 만들고,
어른들은 여유롭고 따뜻한 미래를 꿈꾸는 어울림의 공동체이자 지속가능한 대한민국 체험마을의 실험을 지금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오늘 이 마을에서 했던 체험은 미래의 마을을 만나는 시간 여행일지도 모른다.
[여행 TIP]
[마을정보]
마을주소 :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 한드미길 37(어의곡 2리 298-1)
전화문의 : 043)422-2831 / 010-8745-2625 (한드미마을 대표 정문찬)
홈페이지 : www.handemy.org
오시는길:
[자가용]
- 서울방면 : 경부고속도로 → 신갈 분기점 → 영동고속도로 → 만종분기점(남원주) →
중앙고속도 로→ 북단양 나들목 → 단양
- 부산방면 : 경부고속도로 → 금호분기점(서대구) → 중앙고속도로 → 단양 나들목 → 단양
- 광주방면 : 88고속도로 → 서대구 → 금호분기점(서대구) → 중앙고속도로 → 단양 나들목 → 단양
- 대전방면 : 대전 나들목 → 경부고속도로 → 남이분기점 → 중부고속도로 → 증평나들목 →
37번국도 → 충주 → 단양
- 강릉방면 : 영동고속도로 → 만종분기점(남원주) → 중앙고속도로 → 단양나들목 →
단양 영동고속도로 → 장평나들목 → 평창 → 영월 → 단양(지방도로이용)
*위 정보는 2020년 7월에 작성된 것으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방문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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