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돌담길에서 오랜만에 찾은 여유, 아산 외암민속마을작성일 | 2025-06-10
500년 돌담길에서 오랜만에 찾은 여유, 아산 외암민속마을
아산 외암민속마을
“오늘은 일교차가 클 전망입니다. 최저 기온은 14도, 최고 기온은 28도로 예상됩니다.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뉴스 속 기상캐스터가 특유의 경쾌한 목소리로 초여름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아침 산책하기에 딱 좋은 날씨가 아니던가.
하늘에는 잿빛 구름이 가득했지만, 나름대로 괜찮았다. 따가운 햇살을 피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예상했다시피, 외암민속마을은 고요했다. 적막이라기보다는 차분함에 가까웠다.
기상캐스터의 우려 섞인 이야기와는 달리, 바람 하나 없이 선선한 공기만이 세상을 품고 있었다.
돌다리 아래로 흐르는 외암천은 잔잔했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만이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이른 아침부터 찾아오기를 잘했다. 외암민속마을의 정취를 혼자서 누리고 싶었달까.
주말, 그것도 특별한 행사가 준비되어 있다는 날이어서 그저 욕심에 그칠 줄 알았건만. 다행이었다.
여행객이 모여들 때까지 그리 긴 시간이 남지는 않았어도, 이 풍경을 오롯이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다리를 건너 마을 입구에 섰다. 세 갈래로 나뉘는 길. 큰 고민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이곳에서도 특별히 봐야 하는 고택들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어차피 걷다 보면 하나씩 만나게 될 터였다.
충남 아산의 외암민속마을은 5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마을이다.
안동의 하회마을, 경주의 양동마을처럼 국가민속문화유산에 지정되어 있다.
조선 시대 향촌의 모습을 오랫동안 간직해 역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를 받아서인지,
2011년에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이곳을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올려두기도 했다.
이렇게 큰 마을이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있는 데에는 주변 환경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동쪽으로는 설화산이, 서쪽으로는 외암천이 흐르며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으로 손꼽힌다.
주변에 높은 산이나 건물이 없어 일조량이 풍부하기까지 해, 농경에 유리한 땅이기도 하다.
마을 입구에 쓰여 있는 설명처럼 외암민속마을의 풍경은 우리가 상상하는 조선 시대 향촌의 모습 그대로였다.
마을 옆으로 펼쳐진 들판은 오랜 세월 이 마을 주민들이 농사를 지어왔다는 땅이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마을 뒤로 야트막하게 솟은 산은 마음의 안정을, 앞에 흐르는 물줄기는 풍요를 가져다주었을 터.
마을 내에는 지금도 50여 호의 가옥이 모여 있는데, 조선 시대 상류층 가옥인 기와집, 평민층 가옥인 초가가 조화를 이룬다.
지금도 많은 주민이 살고 있다. 대부분이 오랫동안 이 지역에 살아온 예안 이씨 일가의 후손이다.
예안 이씨의 종가인 종손댁, 외암 이간(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유학자, 마을 이름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선생이 태어난 건재고택, 송화댁, 참판댁 등등
여러 고택이 마을 내에 남아 있으나, 대부분 사유지로 인해 실내 관람이 어려웠다.
한옥 스테이로 운영하는 공간도 있다고 하니, 다음 기회에는 꼭 하룻밤 묵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유명 관광지에서의 밤은 흔한 경험이 아니니까 말이다.
고택 내부가 궁금했지만, 문득 골목길을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느린 발걸음으로 마을 골목을 거닐기만 해도 좋았다.
심신이 편안해지는 풍경을 곧잘 마주할 수 있었으니까. 집마다 주변에서 구한 듯한 자연석으로 담장을 쌓아 만들어진, 정겨운 돌담길이 구석구석 이어졌다.
돌담길은 초여름의 짙은 초록을 입은 나뭇가지 아래로, 고풍스러운 가옥으로, 마을 변두리의 작은 개울물 옆으로 향했다.
걸음을 조금 더 늦추었더니, 이제는 담장 아래나 앞마당에 꽃나무를 심어둔 것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화려한 장미로 대문을 장식한 집, 분홍낮달맞이꽃과 금계국, 끈끈이대나물 등으로 화단을 꾸민 집을 감상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담장 위로는 찔레꽃이 분홍색 꽃잎을 빼꼼 내밀고 있었다. 어디는 소소하게, 어디는 화려하게.
저마다의 개성으로 집을 꾸며둔 것 같아 왠지 모르게 귀여웠다.
마을을 크게 한 바퀴쯤 돌고 났더니, 허기가 밀려들었다. 마을 옆에 저잣거리라는 게 있다고 해 가보기로 했다.
옛날 장터처럼 꾸며둔 공간에 전통 음식을 파는 식당이 여럿 자리했다.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 앞에는 이미 줄이 길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다소 한적한 집을 찾아 들어갔다. 저잣거리라면 으레 생각이 나는 음식을 주문했다.
잔치국수와 해물파전. 뻔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원래 기본기가 가장 중요한 법이니까.
간단하게 한 끼 하겠다는 생각인데 이게 웬걸. 어마어마하게 큰 해물파전이 등장했다. 남는 건 포장이지, 뭐.
다시 마을로 돌아오니,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아니, 축제는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주말을 맞아 여행을 떠나온 이들로 마을이 북적였다. 축제를 준비하는 이들은 마을 전체에 각종 조명을 달고, 각종 부스가 차려냈다.
해 질 무렵부터 밤 10시까지 진행하는 '아산 외암마을 야행’이었다.
자주 열리는 행사가 아니다 보니 다들 설레는 표정으로 마을을 둘러보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도 주말마다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곳곳에서 열었다.
아무래도 이런 민속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떡메치기가 아니던가. 마침, 떡메질을 끝내고 인절미를 만들고 있는 주민들과 눈이 마주쳤다.
“방금 쪄서 맛있어요.” 라는 말에 홀리듯 가까이 다가갔더니, 몇 개 집어먹어도 괜찮다며 팔 생각이 없어 보이기까지.
“선생님, 사진 몇 장 찍어도 될까요?”
아, 유명해질 준비가 아직 안 됐는디 말여…. 카메라 확 들이대니께 긴장이 돼가꼬 인절미가 영 안 썰어지네잉.
원래 밀리미터 단위로다가 딱딱 맞춰 썰 수 있는디 말여.”
속사포 같은 그의 입담에 여기저기서 손님이 모여들었다. 순식간이었다.
뻥튀기 대포가 터질 때는 순간 정적. 그야말로 ‘지축을 흔드는’ 소리를 처음 들어보았을 법한 아이들은 놀랐고, 어른들은 그저 웃었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솜사탕 기계 앞에는 줄이 길게 이어졌다.
한쪽에는 다른 지역의 농촌 체험 마을들이 부스를 차려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기도 했다.
상류층 가옥에서 진행된 다도 체험과 ‘장원급제! 조선 골든벨’ 에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해가 저물자, ‘야행’ 답게 더욱더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아침에 혼자서 오롯이 즐겼던 고즈넉한 외암민속마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아산과 자매결연도시라는 진주에서 공수해 온 듯한 유등축제 조명 장식은 가장 인기 있는 포토존이었다.
한적했던 돌담길에는 전구 조명이 빛을 밝히며 가장 인기 있는 장소로 변신했다. 구미호로 분장한 사람 앞으로는 긴 줄이 늘어섰다.
물론,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고요하고 한적한 농촌에 이리도 사람들이 가득할 줄이야. 아침까지는 상상도 못 했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날 아침 혼자서 마주했던 마을의 고요함이 문득 그리워졌다.
고요와 축제의 경계를 오가며 마주한 외암민속마을, 그곳에서의 하루는 긴 여운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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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클랜드
외암민속마을의 고요함과 축제의 활기를 모두 만끽하며 하루를 보냈다면, 아산의 또 다른 매력을 찾아 떠나보는 건 어떨까.
피나클랜드는 아름다운 정원과 산책로가 계절마다 다채로운 풍경을 선사하는 수목원이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시작으로 언덕 구석구석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에서 싱그러운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봄에는 튤립, 여름에는 장미, 가을에는 국화를 중심으로 다채로운 꽃의 향연도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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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밸리
모나밸리는 자연과 현대 미술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충남 최대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이다.
야외 정원과 갤러리에서는 환경조형작가 윤경숙 대표의 작품을 중심으로, 여러 작가의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물과 빛, 소리가 어우러지는 워터가든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느껴진다.
레스토랑과 베이커리 카페, 다목적 홀 등 다양한 공간을 운영하고 있어, 문화와 예술을 즐기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에도 제격이다.
외암민속마을에서 느꼈던 전통적인 아름다움에 이어, 피나클랜드의 자연 속 힐링과 모나밸리의 현대적인 예술적 감각까지 더해진다면
아산에서의 여행은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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