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메밀꽃밭을 거닐고, 은빛 가을을 즐기다 제주 와흘메밀마을작성일 | 2025-10-28
하얀 메밀꽃밭을 거닐고, 은빛 가을을 즐기다
제주 와흘메밀마을

10월의 어느 날, 가을을 만나러 제주로 향했다.
제주공항에서 차로 약 20km, 30분 남짓 달리자
구그네오름과 세미오름이 병풍처럼 둘러싼
평화로운 중산간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 입구에 다다르니, 메밀꽃밭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일 년에 두 번, 제주의 봄과 가을을 새하얗게 물들이는 메밀꽃이었다.


와흘메밀마을 주민들은 힘을 합쳐 드넓은 메밀밭을 가꾼다.
"원래 이곳은 공동 목장이었어요.
옛날에는 겨울에 눈이 많이 와서 먹을 게 없으니
집에서 소를 키우다가 봄이 되면 공동 목장으로 내보내고,
가을에 다시 데려가곤 했죠.
그런데 이 땅을 마을 공동의 땅으로 만들어서
메밀밭 사업을 시작한 거예요.“

마을 주민의 설명에 따르면,
이 일대의 지주였던 약 스무 명의 주민이 마을을 위해
흔쾌히 땅을 내놓았고, 그게 지금의 메밀밭이 되었다는 거다.
주민들이 함께 이 넓은 밭을 가꾸고,
여행객을 초대해 이 아름다운 풍경을 공유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메밀은 척박한 환경에서 잘 자라는 작물이다.
돌밭이 많은 제주에서도 쉽게 기를 수 있는 곡식인 셈이다.
더군다나 생육 기간이 70~90일에 불과해,
공기가 선선해지는 봄과 가을에 빠르게 재배하는 것이 가능하다.
논농사를 짓기 어려운 제주의 특성상, 메밀은 오래전부터
제주 사람들에게 구황작물의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현재 전국 메밀 생산량의 60%가량을 제주에서 책임질 정도로,
대표 작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자청비 할망 설화

제주에서는 메밀을 '자청비 할망의 곡식'이라 부른다.
자청비 할망이 메밀을 제주도 사람들에게
가져다주었다는 신화가 있어서다.
"자청비는 하늘의 옥황상제로부터 오곡 씨앗을 받아
인간 세상에 농사법을 전해준 여신이에요.
하지만 처음에는 메밀 씨앗을 가져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시 하늘로 올라가 메밀 씨앗을 구하려 했지만,
옥황상제는 쉽게 허락하지 않았어요."

자청비는 무릎을 꿇고 사흘 밤낮을 빌었다.
땀과 눈물이 흘러 개울이 될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옥황상제가 한 가지 시험을 내렸다.
"99가지 꽃 중에서
다섯 가지 색(푸른색, 흰색, 붉은색, 검은색, 노란색)을
모두 품은 꽃을 찾으면 메밀 씨앗을 주겠다."
자청비는 온 산을 헤매며 꽃을 찾았고,
마침내 그 꽃을 발견했다.

환희에 찬 자청비가 "찾았다! 찾았어!"라고 외치자,
하늘에서 메밀 씨앗이 쏟아져 내렸다.
와흘리에는 문화재로 등록된 본향당이 있어, 매년 마을 사람들이 모여
농사를 잘 짓게 해달라고 비는 의식을 치른다.
자청비 할망에게 감사를 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무당이 세경본풀이를 할 때 자청비 일대기를 쭉 이야기해요.
그 신화를 우리가 마을 스토리텔링으로 만든 거죠."
세계농업유산 밭담과 메밀꽃의 조화

와흘메밀마을은 새하얀 메밀꽃으로 가득했다.
마치 10월의 제주에 눈이 내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들이 일렁이고,
메밀꽃 특유의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메밀밭 사이로 이어진 밭담길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현무암을 낮게 쌓아 길을 만들고,
담 너머로 메밀꽃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 둔 것이었다.

밭담은 밭의 구역을 나누고,
바람 피해를 막는 제주의 전통 농경 시설이다.
2014년 세계중요농업유산에 지정돼,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단다.
그러나 와흘메밀마을의 메밀밭은 구역을 나누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공동으로 경작하고, 수확하는 작물이어서다.
그런데도 밭 한가운데로 밭담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관광객을 위해 일부러 밭담길을 만들었어요,
농사만 짓는다면 돌이 없는 게 편하지만,
우리는 관광객들이 걸으면서 제주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했죠."

밭담길을 따라 걷자, 발밑에서 잘게 굴러가는
현무암 조각들이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길옆으로는 자연스럽게 자란 팽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메밀밭 중간중간에 설치된 그네에서는
젊은 연인들이 사진을 찍으며 웃고 있었다.
자청비 와흘메밀문화제

이렇듯 메밀꽃이 마을을 흰색 물결로 메울 무렵에
자청비 와흘 메밀문화제가 열린다.
이번 가을에는 10월 3일부터 11월 2일까지,
한 달간 손님을 맞이한다.
약 33만 제곱미터 규모의 메밀꽃밭을 무료로 개방해
관광객이 제주의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다.


한쪽에서는 메밀을 재료로 한 여러 음식을 만들어 팔기도 한다.
메밀국수와 빙떡, 기름떡이 인기다.
메밀빙떡을 한입 베어 물자,
겉은 얇게 바삭했고 안쪽에서는 메밀 특유의 고소한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기름떡과 메밀전병도 각각의 매력이 있었는데,
특히 갓 부쳐낸 메밀전병은 씹을수록 구수한 맛이 깊어졌다.
"하루 장사가 끝나면 남은 음식은 모두 버리고
다음 날 새로 준비해요. 안전과 신선도를 위한 마을의 원칙이죠.“
사무장의 말에서 자부심이 묻어났다.

음식만 차려지는 것은 아니다.
지역 내 크리에이터를 모아 플리마켓을 여는가 하면,
메밀가루 등 지역 특산물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기도 한다.

제품 판매를 도맡은 마을 주민은 오가는 이들에게
제주 메밀의 우수성을 연신 강조했다.
"메밀은 재배 기간이 짧아서 농약을 안 쳐요.
진짜 친환경 작물이죠.
게다가 척박한 땅에도 잘 자라는 특성이
제주 도민들의 강인한 생명력과 닮았어요."
메밀 체험 프로그램

축제 기간 중에는 메밀 베개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었다.
제주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베개의 종류 중 하나로,
메밀 껍질을 넣어 속을 채워 사용한단다.
"메밀 껍질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요.
옛날 어르신들이 베개로 많이 사용했죠."

만드는 법은 어렵지 않았다.
체험장에 자리를 잡자, 진행하는 마을 어르신이
메밀 껍질을 한 움큼 쥐여 주었다.
손바닥에서 사각사각 소리를 내는 메밀 껍질이 신기했다.
이 껍질을 베개에 채워 넣기만 하면 된다.
아이와 함께 방문할 계획이라면,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는 것도 좋겠다.
와흘메밀마을
🏡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남조로2455
📱 문의전화 : 064-783-1688
🗓️ 축제기간 : 2025년 10월 3일 ~ 11월 2일
🕒 관람시간 : 09:00~17:00
👐 체험프로그램 : 메밀 베개 만들기 1인 30,000원 (유아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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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돌문화공원

새하얀 메밀꽃밭이 제주의 '가을'을 상징한다면,
이제는 제주의 '근원'을 만나러 갈 차례다.
제주돌문화공원은 화산섬 제주의 돌 문화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전시하는 대표적인 문화관광지다.
제주도의 탄생신화인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전설을 테마로 조성된 이곳은 2023~2024년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 관광 100선'에 선정되었으며,
공립박물관 평가에서도 연속으로 인증 받은 우수 시설이다.

제주돌문화공원은 오백장군갤러리와 설문대할망전시관,
돌박물관, 야외전시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돌박물관은 자연환경과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기 위해
지하에 건설되었다.
제주의 돌 문화를 시대별, 용도별로 체계적으로 전시하는 공간이다.
야외에는 설문대할망 신화와 관련된 물장오리오름을 형상화한
수경 시설이 자리하기도 하는데, 인생샷 성지로 유명하다.

규모가 상당하다.
천천히 거닐면서 둘러보기만 해도
두세 시간은 훌쩍 지나갈 만한 수준이다.
석상과 전시관, 제주의 곶자왈 사이로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가을 산책하기에 제격이다.


사방이 탁 트인 설문대할망전시관 일대,
하늘 높이 솟은 바위 수십 기가 서 있는 오백장군 석상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세상과 잠시 연결점이 끊어졌다고 느껴질 정도로
고요한 매력을 품고 있다.
걷는 게 벅차다면 셔틀 차량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공원 측에서 주요 거점을 오가는 카트를 운행하고 있어,
조금 편안하게 공원을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마음에 드는 공간만 깊이 있게 살펴보는 것 또한
제주돌문화공원을 현명하게 관람하는 방법이다.

제주돌문화공원은 예술품 전시를 관람하기에 좋은 여행지이기도 하다.
설문대할망 전시 공간에서는
제주 신화와 민속, 여성 서사를 종합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전설의 통로를 지나 하늘연못으로 이어지는 동선은
관람객들에게 제주 창조신화를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입구에서부터 거대한 현무암 조형물들이 방문객을 맞이하며,
제주 돌 문화의 웅장함과 신비로움을 동시에 전달한다.
제주돌문화공원과 국립한글박물관이 공동으로 기획한
설문대할망전시관 개관 기념 특별전 <사투리는 못 참지!>가
오는 12월 7일까지 이곳에서 이어진다.


오백장군갤러리에는 제29회 제주미술제
<잇고있다있고잇다>가 11월30일까지 열린다.
회화, 조각, 사진, 설치미술, 영상, 공예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시다.
홍정표, 현용준 기록사진전 <섬의 시간, 삶의 기억> 또한
내년 2월까지 이곳에서 진행한다.
제주돌문화공원
🏡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남조로2023 제주돌문화공원
📱 문의전화 : 064-710-7731
🕒 관람시간 : 09:00 ~ 18:00 (매표 마감 17:00)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공휴일일 경우 정상 운영 후 그다음 날 휴관)
💲 관람요금 : 어른 5,000원, 청소년·군경 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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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래자연휴양림

제주도에는 ‘곶자왈’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지형이 있다.
제주어로 '숲'을 뜻하는 '곶'과
'자갈이나 바윗덩어리'를 의미하는 '자왈'이 만나 형성된
독특한 화산 지형이다.
열대 북방한계식물과 한대 남방한계식물이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독특한 식생이다.
함몰지와 돌출지가 불규칙하게 이어지는 지형 덕분에
다양한 식물이 서식하는 신비로운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다.

제주돌문화공원 옆에 조성된
교래자연휴양림 내에서 곶자왈을 만나보자.
교래자연휴양림은 제주 최초의 자연휴양림으로,
생태관찰로와 오름 산책로, 숙박 시설, 야영장 등을 갖춘 곳이다.
특히, 제주의 전통 초가를 모티브로 한 숙박 시설을 마련하고 있어,
제주를 찾는 여행객 사이에서 인기를 끈다.
하룻밤 묵으면서 제주의 깊은 숲을 누리는 것도,
가볍게 산책하며 곶자왈의 매력에 푹 빠져보는 것도 좋다.

휴양림 내 생태관찰로는 총 2.5km 구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때 묻지 않은, 고요한 숲이 끝없이 펼쳐진다.
마치 판타지 세계 속 어딘가를 거닐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까지 한다.
체력이 허락한다면 오름 산책로까지 방문해 보자.
교래자연휴양림
🏡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남조로2023 교래자연휴양림 (제주돌문화공원과 같은 주소)
📱 문의전화 : 064-710-7475
🕒 운영시간 : 09:00 ~ 18:00
🚫 탐방로 마감 : 생태관찰로 하절기(17:00), 동절기(16:00) / 오름산책로 : 하절기(16:00), 동절기(15:00)
💲 관람요금 : 어른 1,000원, 청소년·군경 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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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굼부리

가을철 억새 군락이 자아내는 장관을 감상하고 싶다면
‘산굼부리’로 향하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곳은
깊이 100m, 지름 600m에 달하는 분화구를 품은 기생화산이다.
매년 10월 중순부터 11월까지,
끝없이 펼쳐진 은빛 억새 물결을 보기 위해
수많은 여행자가 이곳을 찾는다.


산굼부리의 매력은 입구부터 정상까지 이어지는 산책로에 있다.
완만한 경사의 산책로 양옆으로
사람 키보다도 훨씬 큰 억새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제주의 가을바람에 수많은 억새 이삭이
이리저리 춤추는 모습은 은빛 바다를 연상케 한다.
해 질 무렵이면 석양빛을 받은 억새밭이 황금빛으로 물들기도 하는데,
이 또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가장 신비로운 억새를 만나고 싶다면
아침 이슬을 머금은 이른 오전,
가장 역동적인 황금빛 물결을 보고 싶다면
저녁노을이 지는 해 질 무렵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산굼부리
🏡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비자림로768
📱 문의전화 : 064-783-9900
🕒 운영시간 : 3~6월, 9~10월 09:00~18:40 (입장 마감18:00) / 7~8월, 11~2월 09:00~17:40 (입장 마감17:00)
💲 관람요금 : 성인 7,000원, 청소년·어린이 6,000원, 경로·국가유공자·장애인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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