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에서 만나는 농촌의 맛과 멋, 예천 금당실 전통마을작성일 | 2025-11-04
명당에서 만나는 농촌의 맛과 멋, 
예천 금당실 전통마을

풍수에서는 전쟁·기근·재난을 피할 만한 열 곳을 ‘십승지’라 부른다.
조선 건국 당시, 태조 이성계가 도읍지를 정할 때도 이 십승지를 고려했단다.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에 물이 풍부한 
예천 금당실 전통마을도 그런 터로 전해진다.
백 년은 훌쩍 넘은 고택과 미로 같은 돌담길, 
거기에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까지 어우러진 마을을 걸으면 
그 기운이 전해진다. 
과연, 명당이로다.

고즈넉한 전통마을에서 진한 농촌의 맛과 멋을 만났다. 
오래도록 머물고 싶었던, 그래서 발걸음이 느려졌던 
어느 가을날의 이야기다. 
ㅡ
금당실 전통마을




인자한 미소의 장승들의 환영을 받으며 마을 체험관에 도착했다. 
햇살이 포근하게 내려앉은 한옥과 
너른 잔디밭이 정갈한 분위기를 풍겼다. 
바람이 솔솔 통하는 정자와 자그마한 카페는 평온함을, 
누마루 옆 물레방아는 운치를 더했다.


수채화처럼 곱게 물든 종이컵 풍경은
바람에 살랑대고,
햇볕이 따끈한 자리에서는 
고양이가 꾸벅거리는 오전.
완벽하게 평화로운 가을이었다. 

금당실 전통마을은 체험, 음식, 숙박에서 
1등급을 받은 으뜸촌 마을이다. 
그렇다면 모두 경험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체험’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공기마저 맛있어지는 가을. 
이 계절에 꼭 어울리는 고추장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먼저 우리나라 고추장의 역사와 예천 고추의 우수성, 
고추장의 종류와 효능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찹쌀부터 보리, 매실, 오미자, 고구마까지 
고추장의 종류가 생각보다 다양해서 놀랐는데, 
조청에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종류가 나뉜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은 ‘찹쌀고추장 만들기’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미리 만들어둔 찹쌀 발효 조청과 개별 포장된 예천 청결고춧가루, 
메줏가루, 소금을 하나씩 받으면
준비 끝! 
재료는 단출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고춧가루는 마을에 위치한 공장에서 
직접 고추를 세척하고 절단한 후, 
저온열풍으로 건조한 뒤 불순물을 제거해 만들었다. 
찹쌀을 은근히 끓이고 달이면서 
조청을 만드는 데에는 10시간 정도가 걸린단다.
“저희가 직접 다 만들기 때문에 2~3일 전부터 준비해요.”



정성을 가득 담아 준비해 주신 덕분에 
체험은 어린아이들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해졌다. 
조청에 소금을 넣고 저은 후, 메줏가루를 넣고 다시 저었다.
소금과 메줏가루가 잘 녹았다면, 
마지막으로 고춧가루를 붓고 열심히 섞었다.

5분 만에 아는 냄새가 풍기고, 익숙한 질감이 보였다. 
순식간에 고추장이 완성되었다. 
“어머, 진짜 고추장이네! 맛있어!”

참가자들은 쉽고 빠른 체험에 한 번, 그 맛과 향에 또 한 번 놀랐다. 
아이들이 만들면 가루를 조금씩 넣고 저어야 하기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고.
“소금이 많이 안 들어가잖아요. 그러니 꼭 냉장고에서 발효해 주세요. 
2주 정도면 맛있게 익을 거예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빨간 고추장을 보니 꼴깍, 
군침이 돌았다.
2주 후에 다시 만나자, 내 고추장.

다 먹으면 또 만들러 올까 고민하는 차에
반가운 이야기도 들었다. 
바로 고추장 만들기 키트가 배송된다는 것!
찹쌀 조청과 예천에서 난 재료들을 택배로 받아볼 수 있다니, 
집으로 농촌의 마음이 배달되는 셈이다.

이날은 30여 명의 예천 여성 농업인이 방문하는 날이었다. 
서로 챙겨주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나 홀로 여행자의 
‘외로우면 어쩌나’하는 걱정은
깨끗하게 사라졌다.

단체 방문객 덕분에 개인 여행객도 
‘으뜸촌’ 1등급의 음식을 맛볼 기회가 생겼다. 
음식 체험관으로 자리를 옮기니 
맛깔나는 반찬들이 뷔페식으로 차려져 있었다. 
철마다 달리 나는 지역 농산물을 활용하니 맛이 없을 리가.


25인 이상이 신청하면 1인 12,000원에 제철 집밥을 차려 주는데, 
날짜가 맞으면 개인 여행객도 비용을 지불하고 
함께 식사할 수 있다. 
홀로 갔다가 신나게 그릇을 싹싹 비웠던 나처럼 말이다.

손과 입으로 농촌의 맛을 음미했으니, 
이제 멋을 누릴 차례. 
이번에는 한옥 모형을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옥 모형 만들기는  여러 구조물을 순서대로 조립해
 하나의 한옥을 만드는 체험이다. 
그 과정에서 한옥의 주요 구조와 그 이름을 배우게 된다.


“이 너른 판은 잘 다진 땅이에요. 
거기에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워야 비가 와도 땅이 안 꺼집니다.” 
길쭉하고 작은 원목 조각들만 보았을 때는 
대체 이걸 어떻게 만드나 싶었는데,
선생님의 상세한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주춧돌, 대들보, 서까래 등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정확히는 몰랐던 구조물의 역할과 형태를 배우며
하나씩 모양을 잡아 나갔다.
 
“건물 가장 위에 놓는 이건 종도리라고 해요. 
종갓집이나 종택에 들어가는 ‘종’이 마루 종(宗)인데요. 
종도리는 건물의 중심을 이루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요.”


재미난 이야기와 함께 
한옥을 만드는 과정이 특별한 이유는, 
실제 한옥 건축의 축소판이라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이 집을 홈과 구조물을 끼워 맞추며 만들고 있죠? 
한옥을 지을 때에도 못을 거의 쓰지 않고
이렇게 나무끼리 맞춥니다.” 
전통 한옥의 장인 정신마저 느낄 수 있었다.


금당실 전통마을에는 정말 많은 전통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다도와 요리, 국궁 및 전통놀이, 교복 입어 보기, 굴렁쇠 굴리기 등 
농촌의 정겨움이 묻어나는 것들이다. 
살짝 ‘찍먹’ 해 보는 것만으로 아쉽다면, 
하룻밤 머물며 농촌의 문화에 흠뻑 빠져보는 것도 좋겠다.


마을에서는 최소 4인부터 50인까지 머무르기 좋은 한옥체험관이 있다.
방마다 크기와 구조는 물론, 창밖으로 들어오는 풍경도 다르니
계절마다 묵어도 질리지 않을 것만 같다. 
🏡 위치: 경북 예천군 용문면 금당실길 118-32
📱 전화: 010-8634-0233
🌐 홈페이지: https://www.ycgds.kr/shop/index.php 
👐 체험프로그램: 
한옥집모형만들기(7,000원/3인 이상), 
고추장 만들기(15,000원/4인, 10,000원/5인 이상), 
식사 체험(12,000원/25인 이상)
🕒 운영 시간: 09:00~18:00
느리게 더 느리게, 
금당실 마을 산책

금당실 전통마을의 매력은 체험만이 아니다. 
미로처럼 이어지는 돌담길과 곳곳에 자리한 고택은 
절로 산책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걸었다. 
오후가 되면서 가을의 색이 더욱 
짙어지는 시간에.

마을 곳곳에서 주요 건축물을 표시한 
안내도와 팻말이 눈에 띄었다. 
안내도를 잠시 들여다보다 그냥 무작정 걸어보기로 했다. 
마을 사무장님의 다정한 말이 떠올라서였다.
“우리 마을이 좀 미로 같은데, 어디를 걸어도 좋아요. 
그래서 어디에서 시작하든, 
어느 방향으로 가든 예쁜 풍경을 만나실 거예요.”


과연, 모든 길이 아름다웠다. 
돌담 너머로는 감나무가 가지를 뻗고 있었고, 
대문 너머에는 장독대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돌담길의 길이는 약 7.2km이다. 
높이와 모양이 조금씩 달라서였을까.
마을을 걷는 동안 같은 풍경은 단 하나도 볼 수 없었다.


마을의 고택들은 민박집으로 운영 중이었다. 
1900년대의 고가옥을 개축한 유천초옥, 
독립운동가 김형식 선생의 집이었던 김대기 가옥 등은 
곱게 단장을 하고 여행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옛 정취를 간직한 집에서의 하루는 어떨까. 
다음엔 이 집에 머물러볼까. 
걷는 동안 수십 개의 여행 계획이 세워졌다.


민박집이 아니라서
자유롭게 둘러보기 좋은 한옥은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반송재 고택이다.
조선 후기 영남 북부 지역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으로 
1680년경에 지어졌다.
보존 상태가 좋아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기에 딱이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면 뜻밖의 장면을 마주하기도 하는데, 
금당실 마을에서는 고인돌이 그랬다.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고인돌들은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를 지나 현재에 이르는
마을의 역사를 보여준다.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주민들의 노력 덕분에
돌담과 한옥, 고인돌이 어우러진 독특한 모습이 이어지고 있다.
ㅡ
금당실 송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금당실 송림은 마을의 자랑이다.
용문초등학교 앞에서 금곡서원 앞까지 
길게 이어진다.

약 800m에 걸쳐 900여 그루의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숲은
금당실 전통마을과 함께 예천 8경 중 하나로 꼽힌다.


소나무의 평균 수령은 100~200년, 
소나무 간 평균 간격은 50m 내외라 숲이 울창하다. 
소나무 사이로는 산책로와 정자, 평상이 있으니 
어느 계절에나 쉼을 즐기기에 좋다. 
송림과 멀지 않은 곳에는 
1568년(선조 1)에 지어진 금곡서원과 
1582년에 지어진 정자, 초간정이 있다. 
함께 둘러보면 가을 여행의 정취가 깊어질 것이다.
🏡 위치: 경북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 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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